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오시프 스탈린 (문단 편집) == 어록 == 이중에는 실제 스탈린이 했는지 의심스러운 출처가 없는 말들이 있으니 유념하고 보길 바람. >"나는 독재자가 아닙니다. 당의 결정을 따르는 일꾼일 뿐이죠." >---- >ㅡ 1931년 영국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 >"현대군은 공격부대다. [[붉은 군대]]는 현대군이다!" ---- >"히틀러라는 친구 굉장해! '''[[대숙청|정적은 그렇게 다뤄야 해!!]]'''" >---- >ㅡ 1934년 [[장검의 밤]] 소식을 듣고[*출처1 리처드 오버리 <독재자들>] ---- >"지도자들은 왔다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인민들은 남습니다. '''오직 인민만이 영원합니다.'''" >---- >ㅡ 1937년 [[대숙청]] 중 연설 ---- >"현명한 자는 보는 걸 믿고 겁쟁이는 믿는 걸 본다." ---- >"정직한 외교관은 나무로 만든 철이나 마른 물과 같다."[*출처2 Speech "The Elections in St. Petersburg" (January 1913)] ---- >"어떤 나라의 외무장관이 평화 협정에서 목숨을 걸고서라도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고 말한다면, 그 시간에 본국에서는 최신 군함과 전투기들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출처3 Speech "The Elections in St. Petersburg" (January 1913)] ---- >"감사하는 마음은 개나 앓는 질병이다."[*출처4 The Memoirs of former Stalin's secretary (1992) by Boris Bazhanov] 또는 "예의나 배려는 개나 앓는 질병이다." 라고도 전해진다. [[츤데레|정작 스탈린은 별에별 시시콜콜한 호의도 잊지 않고 모두 갚아주고,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악감정 역시 사소한 것까지도 되갚았다. ---- >"우리의 적들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한다면,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직접 해버리면 된다."[*출처5 The Political Report of the Central Committee, The Fifteenth Congress of the C.P.S.U.(B.) (7 December 1927)] ---- >"[[바그라티온 작전|가장 큰 기쁨은 적을 골라 세심하게 한 방 먹일 준비를 하고 무자비한 복수의 갈증을 충족시킨 뒤 집에 가서 자는 거야.]]"[*출처6 1923년 카메네프, 지노비예프와 잡담 중. Trotsky's Diary in Exile, 1935, p. 64.] [[트로츠키]]는 이 말을 카메네프가 스탈린, [[펠릭스 제르진스키]]와의 대화 내용을 말해준 것을 회상한 것이라고 했다. ---- >"[[교황]]이라! 그런데 교황은 몇 개 사단이나 갖고 있답니까?" 1935년에 프랑스 외무장관 라발과 모스크바에서 스탈린과 회담하다 "소련에서 종교 탄압이 줄면 저희가 교황과 일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자 스탈린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출처들 [[http://sonnet.egloos.com/4443362|1차 출처]], 2차 출처 Churchill, Sir Winston. The Gathering Storm : The Second World War Vol.1. Houghton Mifflin, 1948(Houghton Mifflin Harcourt, 1986). p.121.] 이 말의 출처는 [[윈스턴 처칠]]인데, 처칠은 라발이 뭐라 답했는진 모르지만 열병식에 보이지 않는 종류의 군단(legion)이 있다고 답했을 것이라 추측해 적었다. 이는 극단적인 관념론적 존재인 교황과 반대되는 극단적 유물론자인 공산주의적 [[반종교주의]]자의 관점을 한 마디로 보여준다. ---- >"내가 죽고 나면 사람들은 내 무덤에 쓰레기를 집어던지겠지만, 결국 역사의 바람이 그 쓰레기들을 전부 쓸어낼 것이다."[*출처7 출처: Felix Chuev's 140 Conversations with Molotov Moscow, 1991.] 몰로토프와 대화를 나누다 나온 말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스탈린 사후 그의 평가는 진짜 저 말대로 되었다.[* [[니키타 흐루쇼프|후임자]]가 주도적으로 격하해서 [[소련 해체]]까지 [[소련]]의 [[흑역사]]로 남아있었으나, 세월이 흐른 현재의 [[러시아 연방]]에서는 그가 이끌었던 국가적 승리에 초점을 맞춘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해졌다.][* 하지만 러시아 밖에서의 평가는 매우 나빠 히틀러와 마오쩌둥 급이다. 큰 업적을 이루었지만 엄청난 범죄로 인해 대부분의 쓰레기를 치우지 못했다.] ---- >"표를 던지는 사람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표를 세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출처8 Said in 1923, as quoted in The Memoirs of Stalin's Former Secretary (1992) by Boris Bazhanov] ---- >"속도를 늦추면 뒤떨어집니다. 그리고 뒤떨어지면 패합니다. 우리는 패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패배는 우리가 바라는 게 아닙니다. 옛 러시아의 역사는 무엇보다도 뒤떨어진 탓에 끊임없이 패배한 역사였습니다. 러시아는 몽골의 칸에게 패하고, 터키의 파샤에게 패하고, 스웨덴의 봉건 영주에게 패했습니다. 러시아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영주들에게 패하고, 영국과 프랑스의 자본가에게 패하고, 일본 남작에게 패했습니다. 러시아가 뒤떨어진 탓에 모든 사람에게 패했습니다. 군사적으로 뒤떨어져서, 농업이 뒤떨어져서 패했습니다. 그들이 러시아를 친 것은 그게 이익이 되고 그러고도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혁명 전의 시인이 한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너는 비참하다, 너는 풍요롭다, 너는 강력하다, 너는 무력하다, 나의 조국 러시아여.'" >---- >- 1931년 2월 5일 산업 관리와 경영자 협의회에서 한 연설[*출처 스탈린 강철권력 p.478~79] ---- >"[[이탈리아 파시즘]]이나 독일의 [[나치즘|국가사회주의]]는 그러한 [[스탈린주의|소비에트 사회주의]]와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로 공장, 토지, 은행, 운송수단 등의 사적 소유권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일과 이탈리아의 자본주의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 >- 1936년 4월, Roy W.Howard와의 [[https://books.google.com.au/books?id=kF1bAAAAcAAJ&printsec=frontcover#v=onepage&q=Neither%20Italian%20fascism%20nor%20German%20national%20%22socialism%22%20have%20anything%20in%20common%20with%20such%20a%20%5BSoviet%20socialistic%5D%20society%2C%20primarily%20because%20private%20ownership%20of%20factories%2C%20plants%2C%20lands%2C%20banks%2C%20means%20of%20transportation%2C%20etc.%2C%20remain%20untouched%20there%2C%20and%2C%20therefore%2C%20capitalism%20in%20Germany%20and%20Italy%20remains%20in%20full%20force.neither&f=false|인터뷰]] ---- >"인류 역사상 무적의 군대란 존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 1941년 7월 3일, [[https://www.marxists.org/reference/archive/stalin/works/1941/07/03.htm|라디오 연설]]에서. ---- >"붉은 군대에서는 전진할 때보다 후퇴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 >- 당시 미국 대사 Averell Harriman과의 대화 중.[*출처9 Truth about the Great Patriotic war by B. Sokolov (in Russian)] ---- >"교육은 누구의 손아귀에 쥐어졌는지,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에 따라 효과가 결정되는 무기다." >---- >- 1937년 9월, [[허버트 조지 웰스]]와 [[http://www.rationalrevolution.net/special/library/cc835_44.htm|인터뷰]]에서. ---- >"신이 [[윈스턴 처칠|당신]]의 편이라고? 그가 [[보수당(영국)|보수당]]원인가? 악마는 나의 편이며 그는 훌륭한 공산주의자다." >---- >-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에서 [[윈스턴 처칠]]에게.[* 출처10 Fallen Eagle: The Last Days of the Third Reich (1995) by Robin Cross, p. 21] ---- >[[변증법적 유물론|"양은 양만의 질이 있다."]] ---- >"열린 마음은 문지기 없는 요새와 같다." ---- >"인간에겐 막역한 사이란 없다. '''막연한 사이'''만 있을 뿐이다." ---- >"악인의 무관심은 선행이 되지만 선인의 무관심은 악행이 된다." ---- 카이로 회담 당시 [[윈스턴 처칠]]은 스탈린에게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우두머리로서 자신과 많은 비교가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그것에 대해 믿고 따르기보단 어떻게든 그 결정을 막을려고만 드는 자신의 부하에 비해 스탈린의 부하들은 겸손하며 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 스탈린의 통솔력의 비법이 궁금했던 처칠은 스탈린에게 통솔력의 비법을 물어봤다. 그러자 스탈린은 특유의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포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지요." ---- >"결국 죽음이란 나쁜 것을 잃는 거다." ---- >"공포 앞에 논쟁이란 없다." ---- >"상황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상황은 단지 사람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지금 우리의 혁명은 적들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적에게 죽느니 차라리 우리가 흘린 피에 익사하는 길을 택하겠다.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마라." ---- >"인민은 [[낙엽]]과 같다. 하나씩 밟을 때는 바스락거리지만 한데 긁어모아 불을 붙이면 매우 잘 탄다." 소수의 인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별 것 아니지만 다수의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막을 수 없다는 말이라는 해석도 있고, 인민들을 적당히 탄압하면 저항하지만 본보기로 다수를 모아 처리하면 겁 먹어 찍소리도 못한다는 말로 해석하기도 한다. 스탈린이 두 가지 [[러시아 혁명|해]][[대숙청|석]]을 모두 경험했던 인물인만큼 어느 쪽으로 받아들여도 말이 되기 때문에 이래저래 애매하다. ---- >"[[사단(군사)|사단]]을 시장에서 판다면 사주겠지만 '''시장에서는 사단을 팔지 않는다.''' 증원은 불가능하다." >---- >- 1942년 5월,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도중 포위섬멸 위기에 처한 [[티모셴코]] 원수의 증원 요청에 대한 답신. 소련군이 섣부르게 시작한 공세는 이 때의 독일군 역습을 받아 대참사로 끝났다. 마침 캅카스를 향한 하계 공세를 계획하던 독일군은 전투 종료 1달 만에 [[청색 작전]]을 발동했다. 티모셴코는 이후 일선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된다. 사실 스탈린의 책임이 워낙 컸던 패배다 보니 면피성 인사 조치이긴 하지만 이를 계기로 스탈린이 군부의 구체적인 작전 수행에 [[전화위복|시시콜콜 간섭하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 >"[[포병]]은 현대전의 신이다." 이는 현대전에서 포병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자주 인용하는 문구로 그냥 한 말이 아니라 [[http://panzerbear.blogspot.kr/2015/12/blog-post_7.html|포병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상당한 통찰력도 가지고 있었다.]] 인력은 아껴도 포탄은 아끼지 말라거나, 공세에는 반드시 포를 동원하라거나 하는 발언을 전략회의에서 했다. ~~문제는 [[종교|인민의 아편]]을 금지해야 하는 공산권 지도자라는 분이 [[신|그 아편의 원탑]]을 칭송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점~~ ---- >"[[석유]] 없이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장차 다가올 전쟁에서는, 석유에서 우위를 점하는 자가 전쟁에서 승리의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 1927년 12월 3일 연설에서 ----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 >- 1935년 5월 4일 붉은 군대 사관학교 졸업식 연설. 간부가 제일 중요하다는게 아니라 간부 집단의 질적 향상이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뜻. ---- >"넌 스탈린도 아니고 나도 스탈린이 아냐! 스탈린은 소련 권력이야!"[*출처11 젊은 스탈린, 496p] 둘째 아들 바실리 스탈린이 자신의 성을 쓰자 이렇게 일갈했다. ---- >"이제, 우리는 누가 진정한 공산주의자인지, 그리고 누가 공산주의자인 척 말하고만 있는지 보게 될 것이오. (중략)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권력을 얻었으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권력을 행사하는 능력은 부족하오." >---- >- 1928년 시베리아의 [[바르나울]]에서, 대대적인 [[집단농장|농업 집단화]]를 시행하기 전에. ---- >"동지 여러분, 삶이 좋아졌습니다. 삶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울 때 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쁘고, 보기 흉하고, 불행했다면 스타하노프 운동이 있었겠습니까?." >---- >-1935년 스타하노프 노동자 회의에서. ---- >"포화 속에 수천 킬로를 달린 병사들에게 그런 즐거움([[강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합니까?" >-구 [[유고슬라비아]]를 탈환하며 주둔해 있던 [[강간#s-2.1|소련군이 현지 여성들에 대해 강간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해 항의했던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지도자 '밀로반 질라스'에게 한 말.[* 당시 소련군에 의한 강간 사건은 동부 유럽 140만 건, 베를린 60만 건이나 된다. [[http://youtu.be/0D6aWk1IRPY|#]] 심지어 여성 소련군이 젊은 남성 독일군을 강간한 일도 많았다. [[http://youtu.be/VpcX7o7UyU4|#]]][* 그러나 이에 대한 근거는 티토 시기 반체제 운동을 한 밀로반 질라스의 62년 회고록뿐이고, 밀로반 질라스는 반공주의로 전향하여 56년에 투옥되기도 한 인물이므로 이것이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 질라스는 냉전 이후 미국 네오콘과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는 19세기 유물이자 재앙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의 극성 반공주의자로 변모한 인물이다. 또한 1945년 1월 19일자 스탈린의 이름으로 내린 명령에는 강간을 금지하는 조항과 이를 어길 시 총살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https://www.facebook.com/107090729641832/photos/a.114521008898804/1026602984357264/?type=3&paipv=0&eav=AfZkOib2j6Ac7ETfmbbUAIvIr69_WIHm76F__64FyAVCxcDyAlcmOwplGldbJM1zfIs&_rdr|#]] 이것이 이후 일어난 강간들에 대한 완벽한 반박이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발언들이 맥락적으로 삭제되는 반면에, 밀로반 질라스의 일부 증언은 과하게 인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한정숙 교수는 소련의 최고지도자였던 스탈린은 나치와 독일 인민은 구분되어야 하며 인민은 생존해야한다고 공언했고, 군에 전달된 스탈린의 명령 자체는 교전국 여성들에 대한 강간을 엄금하는 것이었다고 책에서 언급했으며, 그와 동시에 스탈린이 남성주의자여서 밀로반 질라스와 나눈 대화에서 원정군 군인들이 전시에 현지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 성적 욕구를 해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입장을 표명한 적도 있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관련 각주에서 이 기록 자체가 스탈린 정권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었던 질라스의 회상에 바탕을 둔 것이기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 필요도 없다고 언급했다. 한정숙 외 지음, 독일 통일과 여성 - 젠더 관점에서 조망한 독일의 분단과 재통일,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26~27쪽.] ---- >"강한 군대를 가진 나라는 언제나 존경받는다. 핀란드군의 [[겨울전쟁|강인함]]에 경의를 표한다." >-1951년에 했다고 전해지는말.[* 출처:[[굽시니스트]]-[[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 ---- >"왜 [[전차]]에다 [[다포탑 전차|백화점]]을 차리려고 하나!" >---- >-1938년 5월 4일 [[SMK|신형 다포탑 전차]]의 목업모델을 보고 [[KV-1|포탑 한개를 부러뜨리며]] 한 말.[*출처12 [[https://books.google.co.kr/books?id=Y-O3DAAAQBAJ&lpg=PP1&hl=ko&pg=PA94#v=onepage&q&f=false|Zaloga 2015: 94]] Zaloga, Steven(2015), Armored Champion: The Top Tanks of World War II.] 스탈린은 다포탑 전차인 [[T-28]]이나 [[T-35]]를 매우 싫어했다. 그리고 그러한 다포탑 전차들이 실전에서 완벽한 실패작으로 판명된 걸 보면 비록 스탈린이 전술, 전략적으로는 문제가 많았지만 무기를 보는 눈 하나는 있던 모양이다. 한편 이 말 때문에 밀덕들은 어떤 무기에 뭔가를 덕지덕지 붙여놓는 걸 '''"[[백화점]]을 차린다"''' 고 표현하곤 한다. 한편 저 백화점 드립을 두고 [[자본주의]]의 상징이라서 백화점을 싫어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당시 소련에도 백화점이 엄연히 있었다. 즉 자본주의의 상징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백화점처럼 여러가지를 놓았다는 직접적인 비유법에 더 가깝다.[* 나중에 [[대한민국]]의 [[BLACKPINK]]의 [[뚜두뚜두 (DDU-DU DDU-DU)|뮤직비디오]]에서 진짜로 스탈린이 살아있던 시절에 나온 [[T-34-85|소련 전차]]를 백화점마냥 꾸몄다.] ---- >제국주의는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파시즘은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역시 자본주의에서 시작되었다. 민주주의란 한 줌의 자본가들을 물리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 당시 소련의 경제 체제는 클리프주의 계열 좌파 학자들의 평가에 의하면 국가 자본주의이며 [[스탈린주의]]는 제국주의, 전체주의의 성향을 어느정도 겸하고 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 >세상에, 이게 무슨 마르크스주의라는 건가. 이건 완전히 봉건주의잖아. >---- >-[[마오쩌둥]]이 쓴 이론을 읽고[*출처13 The Coldest Winter, 데이비드 핼버스탬, p.532] ---- >'''"아니오!"(нет!)''' >---- >-[[포츠담 회담]], [[얄타 회담]]에서 [[윈스턴 처칠]]의 양보 요구에 스탈린이 자주 내뱉었던 말.[*출처14 존 루이스 개디스, 냉전의 역사(2010)] ---- >조선 사령부가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김일성|귀관]]은 전혀 통보하지 않고 있다. [[북한군|그들은]] 전진할 생각인가? 아니면 전진을 중단하기로 했는가?[* 당시 북한군은 [[춘천 전투]]의 여파로 큰 타격을 받았고 작전 계획 자체가 틀어져 [[서울]]에서 3일 동안이나 진격을 멈춰야 했다.] >---- > 1950년 7월 1일, 북한군이 남진을 멈추자 [[김일성]]에게 보낸 편지[[https://m.youtube.com/watch?v=ZZqQTyYjmKg|출처(2분 부터)]] > 나로서는 굶주린 인민들과 실직한 사람들이 누리는 개인적인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진정한 자유란 착취와 다른 사람에게 억압받지 않는 곳, 실업이 없으며 직장과 집 그리고 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오직 그러한 사회에서만이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개인과 자유가 존재할 수 있다. >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강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노동조합을 지주로 한다는 점이다. 서구에 있는 여러 공산당들의 약점은 무엇인가? 그것이 노동조합과 결합되어 있지 않고, 또한 이들 공산당의 몇몇 분자가 노동조합과의 결합을 바라고 있지 않은 점이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 서구 공산당의 기본적 임무는 노동조합운동의 통일을 위한 캄파니아를 발전시키고 철저하게 추진하며, 전 공산당원이 빠짐없이 노동조합에 들어가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계급을 결집시키는 체계적이고 끈질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공산당이 노동조합을 지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